윤현국, 세종대학교 탄원서

윤현국

October 1, 2015 ·

어제 ‘민족문제연구소’ 소속의 일부 사람들이 “친일 교수를 파면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라” 며 교수의 해임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인터넷에 공유하였다. 또한 세종대학교 총장, 대학학장, 총학생회 회장에게 전달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전달하였는지는 아직 모름. 현재 서명 접수중인 것 같기도 함) 이에 나 역시 세종대학교 총장실 (인터넷 등록) 에 아래와 같은 반대 탄원서를 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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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학문적 양심을 보호해 주시길 바라며 세종대학교 총장님께 올리는 탄원서.

세종대학교 신구 총장님께.

총장님. 안녕하십니까? 바른 인재 교육과 글로벌 대학의 비전을 바탕으로 쉼 없이 달리시는 바쁘신 와중에도, 저의 이 편지가 총장님의 귀한 시간 몇 분을 훔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올립니다.
저는 (탄원서 원본에는 개인 이력과 소개를 상세히 적음. 여기선 생략) 윤현국이라고 합니다. 저의 이름과 재직을 소상히 말씀 올립는 것은, 총장님께 올리는 이 편지가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드리는 비겁한 편지가 아닌 저의 진심이 담긴 편지임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세종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세종인이 아니라는, 또 별 대수롭지 않은 사람에 불과하단 이유로 총장님께서 바로 이 편지를 휴지통으로 넣지 않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이 편지는, 진정으로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양심에 의거하여 연구해온 자랑스럽게 기억되어야 할, 하지만 자신의 양심으로 인해 현재 심각한 비난과 위협으로 고통 받는 한명의 세종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총장님께서도 들어서, 또는 오늘 ‘민족문제연구소’ 라는 곳에서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는 협박성 편지를 통해 이미 아시고 계시다시피, 일어일문학과 박유하 교수는 그 동안의 한국인 다수의 ‘믿어왔던’ 기억과는 다른 주장을 그의 2년전 저서 ‘제국의 위안부’ 를 통하여 하였고, 그의 주장은 ‘나눔의 집’이나 ‘민족문제연구소’ 소속의 일부 사람들 등 배타적 민족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들만의 주장만을 받아 적어 대중의 분노를 확대 재 생산해왔고, 결국 검찰의 수사 및 오늘의 ‘민족문제연구소’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교수직 해임을 요구하는 협박편지까지 총장님께, 인문대학학장께, 그리고 세종대 학생회장에게 보내지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박유하 교수가 “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 ‘일본군은 강제연행에 관여하지 않았다’, ‘피해보상 요구는 무리’ 라고 주장했다.” 라고 하며,
“극악한 친일서적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세종대 박유하 교수를 타격하여 이 땅에 민족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박유하 교수는 책에서 위와 같은 사실을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 또한 해당 서적은 친일서적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부만을 반박하자면 아시다시피 사실은 저자는 책에서

–그래서 센다는 말한다. “제1호 위안부는 군이 모집은 했지만 그 모집에 군인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물론 그는 “그렇다고 군이 (위안부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 라는 중요한 지적도 빠뜨리지 않는다 – (제국의 위안부 p23)

-(일본군의 증언 후) (이 일본 군인의 증언은) 군인들이 ‘관리’는 했지만 직접 모집하거나 영업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군인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군인) 2만명에 (해당 위안부) 50명 정도라는 숫자는 위안부들의 생활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 (p56)

–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에게 ‘적의 여자’ 와는 다른 관계였다. 뿐만 아니라 같은 조선인 위안부라도 그녀들이 놓인 정황은 다양했다. ‘조선인 위안부’란 식민지의 가난과 성적/민족적 차별의식의 소산일 수 밖에 없다. 압도적으로 비대칭적인 숫자의 군인을 감당해야 했다는 점에서도 ‘위안부’가 ‘군인’ 과의 관계에서 희생자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 (p79)

와 같이, 사실은, 위안부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었는지를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배타적 민족주의자들과 일부 단체 소속 사람들이 ‘위안부와 군인은 동지’ 라고 오독하게 된 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동지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전쟁터의 참혹함 속에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일부 끌려온 군인들과 일부 위안부간의 동지적 이해가 생겨나기도 했다는 증언이 있다는 것을 기록함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양쪽 다, 국민동원이라는 국가 시스템 속에서 함께 움직여진 장기말이었다. (중략) 그들의 운명은 다르지 않았다. 그건 그들이 남녀간의 불평등, 민족적 불평등이라는 관계 속에 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 p79)

이것은 일례일 뿐이며, 이같이 그들의 주장에 하나하나 여러 페이지를 들여 이 편지에서 반박함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신 총장님의 식견을 감히 믿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 편지를 읽으시는 총장님의 시간을 무익하게 뺏는 것이라고 사료되기에 더 써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다만, 책을 읽은 독자로서 저의 소견을 감히 총장님께 몇가지 관점에서 올려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책에서 진정으로 주장한 점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첫째. 한국인 대다수가 그동안 믿어왔던 정대협이 심어준 ‘어린 소녀가 일본군의 총칼에 끌려가서 강간을 당하는’ 위안부의 이미지. 그게 위안부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위안부의 모습이 있으며, 이 ‘일본군의 총칼에 끌려간 어린 소녀’ 의 이미지만을 강조할 경우, 그 카테고리에 해당되지 않는 다른 고통 받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는 억눌린다는 점을 지적함입니다. 또한 ‘일본군의 총칼’ 이 전부가 아닌 ‘그에 주도적으로 적극 협력한 일본인 및 조선인 포주들’ 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경제적 착취의 주체를 보여줌으로서, 우리 안에서 이러한 아픈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민족적 자기 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위안부 문제는 단지 한국 대 일본 만의 문제가 아닌, 제국주의의 폭력 대 가난한 식민지, 봉건주의 대 인권주의 문제이며, 남성적 폭력의 여성에 대한 성 착취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일본만이 잘못했다고 믿는 바탕에서는 일본에 대한 사죄만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만, 박유하 교수는 이 사회가 위안부가 연장된, 현재도 우리 사회에 진행중인 다른 형태의 성 착취를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사회적 시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셋째. 바람직한 한일 양국 관계를 위해,일본의 반성을 요구하는 일본 내 양심세력과의 연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과거사는 모든걸 덮어놓고 가자’ 라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도리어 일본 우익세력과 한국인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명명 백백하게 밝혀내고 서로 사죄하고 용서하기를 바라는 것임은 총장님께서도 너무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총장님. 사실 지금까지 올린 말씀은 이미 다 알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음 말씀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인문, 사회학자가 아니라, 화학을 공부하는 한명의 학생일 뿐입니다. 사실은 여태껏 화학을 공부해왔음에도 화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사실 점점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 그런 무능한 연구원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화학을 통해 과학을 공부하며 배운 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믿어오던 기존 관념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또한 선입견과 배치되더라도 증거가 충분하면 그것을 채택하여야 한다는 과학적 회의주의입니다. 그것은 과학의 선조 갈릴레이가 대중과 교회의 믿음에 대항할 때 가졌던 신념이고, 아인슈타인이 절대론자들에 대항했던 신념이고, 양자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에 대항했던 신념이었습니다. 그리고 박유하 교수는 인문학,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여러 자료, 증언들을 수집하여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최근 일본의 우경화 및 복잡한 국내 정치상황과 맞물려 ‘친일 교수’ 라는 프레임에 걸려 대중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대중의 기존 인식과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특히 그것이 인문, 사회과학 분야일 경우, 프레임을 짜 놓고 조여오는 대중들에 의해 쉽게 공격을 받습니다. 보통 이런 공격에 학자들은 학문적, 논리적으로 설명/방어 위주의 대응을 하며, 그것이 박유하 교수가 현재까지 해 온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지극히 옳은 방법입니다만, 문제는, 차분히 설명을 듣고, 그것이 잘못된 기존 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몽둥이와 횃불을 들고 달려드는 군중들에게 학자가 치명상을 입고 끝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운이 좋아야 후세가 되어 복권될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대중을 움직일 힘이 있는 모시장의 경우 박유하 교수의 저서를 읽고서 비판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똥을 꼭 먹어봐야 똥인지 아느냐 그냥 냄새로 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대중의 프레임에 동조, 더 강고히 하고 있는 그는, 사실 그 자신 역시 똑같은 논리로서 ‘종북주의, 공산주의자’ 라고 비판 받아왔는데, 이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예수를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 줄 유태인의 왕’ 이라고 믿었던 군중들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들은 아마 그것이 자신들의 민족을 위해 올바른 일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는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저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박유하 교수를 협박하며, 또한 총장님께 박유하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는 이들은, 사실 그것이 우리 민족을 위해 올바른 길이라고 믿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열정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대중이 보아온 관점과 다른 역사적 사실과 증언, 그로 인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것은 인문,사회학자, 교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 것임에도, 많은 배타적 민족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은 보고 싶은대로만 계속 보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보고싶은 대로만 우리 역사를 볼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우리의 과거 역사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역사를 올바르게 직면하는 민족만이 올바른 미래를 맞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종대학이 아닌 일부 다른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들에 의한 시위 역시 우려합니다. 문제의 편지가 총장님 뿐 아니라 총학생회 학생회장에게도 전달되었다고 하기에 그렇습니다. 박유하 교수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 역시 존중되어야 하며, 학생들도 자신의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 학생의 올바른 방법은 교수보다 치열한 학문 탐구를 통해 그 교수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학문적으로 증명해 내어야 하는 것이지, 집회, 시위를 통하여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미래를 이끌 지성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편지를 쓰기로 결심하기 전 세종대학교 홈페이지를 찾아 총장님의 취임사를 읽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온라인으로 취임식을 하시는 등 혁신을 몰고 오셨으며, 현재도 혁신을 진행중이십니다. 취임사를 통하여 총장님의 세종대학교를 향한 비전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단순히 대학 순위만을 높이기 위해 교육을 등한시하고 연구만을 강조하지 않고, 대학의 항구적 발전을 위하여 연구 능력을 높이고 또한 그로 인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선순환적 균형론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치열한 토론과 열린 마음,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저는 총장님의 그러한 열림 취임사를 읽고, 총장님께 감히 이 편지를 올릴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단지 우리 대중이 믿어왔던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 민족의 올바른 미래를 위해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과거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진실을 추구해 왔고, 대중이 믿고 싶은대로 믿고, 그동안의 선입견에 기초하여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선입견 없이 보고자 했다는 올바른 연구 방법론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와 그 결과로 나온 저서가 100% 옳으냐, 아니면 이후 오류가 발견되느냐의 일은 추가적인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학문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연구와 토론이 진행되는 단계가 아닌, 성난 일부 군중에 의하여 진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 받고, 더 나아가 교직 파면 요구, 인신 공격의 협박까지 받는 상황입니다.

저는 대학은 이런 외부의 공격에 대하여 진리 추구를 보증하는 최종적인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장님께서 흔들리심 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론을 지킨다는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때라고 감히 올립니다. 대중의 선입견에 대해 ‘노’ 라고 말할수 있는 양심적인 교수가 그의 양심으로 인해 피를 흘리지 않도록 총장님께서 보호해 주시기를, 또한 총장님께 전달되어왔을 다른 사람들의 편지에 흔들림이 없으시고 굳건하시기를 두 손 모아 탄원드립니다.

저 같은 글을 잘 쓸 줄 모르는, 세종인도 아닌 사람의 글을 여기까지 열린 마음으로 읽어 주신 것만으로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5년 10월 1일
호주 멜번에서
윤현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