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방정식

일본의 위안부문제 지원자들도 더이상 하나가 아니다. 한일합의에 관해서도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이 기사에 언급된 이들은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 중인 이들이다.

분명 이들이 말하는 대로, 일본인들 일부가 내 책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에 멋대로 이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독해력과 무절제한 왜곡욕망의문제. 심지어 영어요약을 멋대로 만들어 내가 한 요약인 것처럼 유포중인 블로그조차 있었다. (일본쪽 출판사에 대응을 의뢰중)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위해 내 책을 멋대로 왜곡하는 건 이들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이 20수년간의 한일갈등은 이 양쪽이 그런 식으로 세간에 제공해 온 정보의 과장과 은폐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책이 평가받은 건 일본의 책임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제국의 책임”임을 말했기 때문이고, 이 양쪽 세력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그런 나의 논지에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젠가 전여옥이 “일본에는 추녀만 많다”면서 “일본은 없다”고 했던 것처럼, 소수 문제적인 이들에게만 주목하면서 그들을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한 사람들이다.
더 불행한 건 이 양쪽은 똑같이, 자신들이 확산시킨 혐오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의 인권을 말하지만 나의 인권은 개의치 않는다. 이들이 며칠 전, 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는 형사재판을 반대하지 않는 자세를 분명히 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기사 오류를 바로 잡아둔다. 물론 이번 경우 기자가 아니라 발표자가 이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군관여부정–일본군 조선반도 “공식적 강제연행”부정
*책임부정–“법적” 책임 부정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처벌을 부르려는 행위가,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슬픈 봄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8315212&sid1=001


본문: